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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요논단] '1987'에 편승하는 '동아일보'의 역겨움

창간 이래 98년 대부분은 언론인 탄압, 일제·독재권력 부역, 재벌 비호로 점철된 오욕의 역사

이상석 | 입력 : 2018/01/25 [22:46]

▲ 1974년 동아일보 '독자광고' 지면     © 이상석


전두환 독재정권 말기에 일어난 박종철 고문치사 은폐사건과 6월 항쟁을 사실감 있게 다뤄 24일 기준 680만 관객을 동원하는 기염을 토하고 있는 신작 '1987'에 등장한 당시 동아일보 기자들의 활약상을 두고 동아일보가 자화자찬격 기사를 게재해 지각있는 시민들을 아연실색케 했다. 

 

1999년4월 간암 타계한 윤상삼기자, 순직 인정 못받아 편집국장으로 장례... 산재 판정도 2002년에서야 받아

 

일제 시대 동아일보의 영광의 역사는 1936년 일장기 말살사건을 비롯해 몇 건이 있기는 하나 기나긴 친일의 역사에 비하면 조족지혈이라 할 것이다.

 

해방 후 극악무도의 아이콘 이승만·박정희 정권에 저항한 자사 기자들을 회유·협박·폭행한 것은 동아일보 사주와 그들의 충견격인 경영진이었다. 

 

1974년 유신 독재의 언론 탄압에 맞선 동아일보 기자들이 '동아자유언론실천선언'을 발표한 후 독재 정권의 협박으로 광고주 기업체들이 광고 계약을 잇달아 취소하여 촉발된 이른바 '백지광고' 사태 당시의 저항 수단도 뜻있는 독자와 개인들의 후원 광고였으며 이의 효시가 당시 가택연금 중이던 김대중 전 대통령의 명문장이었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또한 그때 성금을 모아 보낸 독자들의 재치있는 격려 광고가 여지껏 인터넷에 회자되고 있기도 하다. “씹히지 말자. 이빨 부러질 때까지”, “동아일보여, 너마저 굴복하면 이민 갈거야”, “이기 니끼가!” 등이 그것이다.

 

그러나 이듬해인 1975년 3월 이러한 자사 기자들의 투쟁을 격려하기는 커녕 폭력 진압하기 위해 용역 깡패를 동원한 것은 박정희 독재정권이 아닌 동아일보 경영진이었다.

 

1987년 전국적인 민주화 투쟁 당시, 편집국 기자가 취재한 기사는 사주라도 함부로 건드리지 못한다는 동아일보 특유의 기자정신이 발휘되었는데 이는 그로부터 12년전 깡패들에게 맞고 내동댕이 쳐지면서도 사주에 저항했던 동아투위 선배들의 자랑스러운 유산이었으리라.

 

한편 동아일보 경영진이 1997년초 이회창 후보측에 지극히 편향된 정치부장을 선임하자 이에 정치부 기자들이 '이런 편향된 정치부장 아래에서 대선은 불가하다'며 투쟁을 시작하여 일부 기자들의 출근 거부 및 정치부장 교체 요구가 심해졌고 사측은 이에 못이겨 그를 교체하였다. 

 

그후 1999년초 동경 특파원이던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보도의 주인공 윤상삼기자가 오랜 과로로 인해 간암으로 타계하였으나 동아일보로부터 순직 인정조차 받지 못해 회사장이 아닌 편집국장으로 장례를 치른데다, 이후 근로복지공단과의 지리한 소송전으로 2002년에서야 산재 인정을 받는 우여곡절을 겪기도 했다.

 

이러던 중 2002년 유시민 작가의 동아일보 절독 선언이 공개되어 그가 동아일보를 통해 세상에 자신을 알린 개인적인 인연을 낱낱이 밝히면서도 왜 공개 절독을 할 수밖에 없었는지 잘 알게 해주었다.

 

"내가 어려울 때 보살펴주었던 오래 사귄 벗이 자꾸만 나쁜 길로 빠지는데,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뿐만 아니라 그 벗은 나를 자기의 벗이라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또 내가 이런다고 해서 <동아일보>가 달라질 가능성이 있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나로서는 최선을 다하지 않을 수 없다." -- 중략 -- "‘짧은 영광’은 기자들의 몫이요, ‘긴 오욕’은 사주와 경영진의 몫이다. 신문사를 살리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었다손 치더라도 부당한 권력 행사에 맞섰던 기자들한테 못할 짓을 한 것 자체를 부정할 수는 없다." (출처: 2002년 4월 10일자 오마이뉴스)

 

이어 2005년엔 언론사로서의 공정성을 이미 상실한 단계에 접어들어 편집국의 사기는 극도로 저하돼 있었고 이에 대한 해법을 논하고자 당시 7년차이던 이완배 기자(현 민중의소리 경제부 기자)가 평기자 총회를 주도했으나 사측은 이 총회를 막기 위해 갖은 비열한 거래를 제안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출처: 6일자 민중의소리 기자수첩)

 

▲ 재벌-언론 혼맥도 (출처: 누리꾼 'egui****' 블로그)     © 이상석

 

그 이듬해인 2006년 동아일보 회장 김병관의 아들 김재열과 삼성 회장 이건희의 차녀 이서현이 결혼했는데 그 10년 후 그가 국정농단 주범 최순실과 엮이게 된 것은 이미 세간에 익히 알려진 이야기다.

 

불의한 오너 가문에 순종하는 현직 기자들, 기백·기자정신 사라진지 오래

 

2008년 등장한 MB정권과 더욱 긴밀한 관계를 지속하면서 조선·중앙에 결코 뒤지지 않는 수구극우언론의 괴이한 형상을 굳혀가던 동아일보는, (이미 퇴사한) 이낙연(현 총리), 윤영찬(현 청와대 국민소통수석), 양기대(현 광명시장, 경기지사 당내경선 출마자), 선대인(선대인경제연구소장, 용인시장 당내경선 출마자), 이완배 기자 등을 포함하여 그나마 기자정신이 남아있던 사람들이 썰물처럼 떠나버리게 되면서 이명박근혜 9년 암흑기와도 신박한 호흡을 맞추게 된다.

 

그런 흑역사를 가진 동아일보가 이번엔 영화 '1987'에 '악취 풍기는 숟가락'을 얹어대기 시작했으니 이 살모사 같은 얼굴을 가진 회사와 그 하수인 '기레기'들의 펜놀림에 얼마나 많은 '깨어있는 시민들'(약칭 '깨시민')의 토악질을 유발했을까.

 

아래 인용된 최근 동아일보의 기사 제목과 본문 문구들을 보고 혹자는 '그 당시의 팩트를 기술한 건 맞지 않은가'라고 반문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건 잊지 말자. 제삼자든 다른 누구든 이런 팩트를 이야기할 자격이 있을지 모르나 동아일보는 결코 이를 자랑질할 자격을 갖고 있지 않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아니 지난 98년 역사를 돌이켜보건대 동아일보가 민족의 인권과 민주화의 가치를 놓고 떳떳하게 자신들의 행적을 자랑할 수 있었던 시기는 거의 존재한 적이 없었거나 있다한들 극히 제한된 기간뿐이었음을 깨시민들이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이는 마치 허구한 날 술과 도박에 쩔어 무고한 처자식에게 상습적인 손찌검을 해대던 패륜 가장이, 자신의 오랜 폭력에 시달리며 불우한 시절을 보낸 자식이 기적적으로 훗날 사회에 큰 공헌을 하게 되자 '내가 몸소 키운, 자랑스런 내 자식이외다'라며 동네방네 떠들고 다니는 것과 진배없는 처신이리라.

 

▣ 2017년 12월 14일자 동아일보 인터넷판 기사 

▲제목: ‘물고문’ 진실 파헤친 東亞의 기자정신, 역사를 바꾸다

▲본문 발췌1: 당시 주요 신문들이 정권의 보도지침 탓에 ‘쇼크사’ 수준의 보도만 하며 손을 놓고 있는 사이 동아일보가 고문치사로 뒤집는 특종을 한 것이다.·

▲발췌2: 실제로 동아일보는 당시 정권의 ‘보도지침’을 무시했다. 1월 16일에 의사 오연상 씨의 ‘고문 의심’ 증언을 담은 특종 기사를 보도지침을 무시하고 5단으로 키워 보도했고, 1월 19일자에서는 전체 12면 중 6개 면을 박종철 사건 기사로 뒤덮으면서 당국의 보도지침을 일거에 깨부쉈다. 

▲발췌3: 타사 기자들이 ‘기사도 안 나갈 텐데, 뭐 하러 가느냐’고 하는 와중에도 박 씨의 시신을 화장하는 벽제 화장터를 취재해 ‘창(窓)―철아 잘 가그래이. 이 아비는 할 말이 없다이’(1월 17일자)라는 기사를 썼다. 이 기사는 수많은 사람의 심금을 울렸고, 6월항쟁을 상징하는 플래카드에도 쓰였다. 연쇄 특종은 5월 22일자에 치안감을 비롯한 상급자들이 고문치사범 축소 조작을 모의했다는 폭로로까지 이어졌다. 당시 남시욱 동아일보 편집국장에게 청와대 정무수석이 전화를 해 “귀지(貴紙)가 이겼어. 진상을 밝히기로 결정했어”라고 했다 한다.

 

▲ 고려대학교 호상     


4.18(4.19 전날 봉기한 고대생 시위), 6.3시위, 반유신투쟁, 87항쟁 주도한 '민족고대' 선배들의 저항정신 계승 못하는 2030 고대인들... '호상' 정신은 어디로

 

한편 추악한 인권 탄압의 DNA는 마치 가문의 유산이라도 되는듯이 소위 '전통 명문'이라는 캠퍼스에서조차도 대대로 강물처럼 이어지고 있다. 10여년째 이어지고 있는 청소노동자 분쟁은 이젠 고려대의 흔한 모습 중의 하나로 굳어진지 오래다. 

 

2008년 '친일인명사전'에 올랐고 작년 4월 대법원 판결로 친일 행적이 증명된 인촌 김성수의 후손들이 113년된 고려대학교와 98년된 동아일보의 오너로서 대를 이어 이 나라의 '공기'(公器)들을 '망치고' 있는 불행이 아직 계속되고 있으나 이에 저항하는 젊은 '고대인'들의 모습은 눈에 띄게 알려진 바 없다.

 

감시하는 시민언론, 견제하는 시민권력, 고발하는 시민기자의 총합을 추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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